정밀 지도 데이터, 왜 구글에 무상 반출하면 안 되는가?
최근 구글이 한국 정부에 ‘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요청하면서 산업계와 시민사회, 정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산업 주권,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현재 이 문제에 대해 심사 기한을 연장한 상태로, 오는 8월 11일 전까지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입니다. 그러나 정밀 지도 반출을 위해서는 국토교통부, 국방부, 국정원 등 8개 부처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국회 토론회에서도 반대 목소리 “무상 반출 절대 안 돼”
지난 5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공개 토론회에서는 “정밀 지도 데이터를 구글에 무상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특히 지도 API의 비용이 국내 스타트업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를 뒤흔드는 구조적 리스크로 부각됐습니다.
“정밀 지도는 단순 위치 정보가 아니다”
모정훈 연세대 교수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AI, 자율주행, 드론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이며, 2030년까지 약 796조 원 규모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지도는 국민 세금으로 구축된 자산으로, 현재 국내 기업들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첨단 산업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글에 무상 반출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오히려 해당 데이터를 다시 구매해야 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될 수 있습니다.
구글 vs 네이버, 글로벌 플랫폼 종속 우려
구글 지도 사용자는 20억 명, 네이버 지도는 3천만 명 수준입니다. 이 격차는 단순한 이용자 수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주권과 산업 주도권이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실제로 2018년 구글이 지도 API 요금을 1,400% 인상했을 때, 전 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은 바 있습니다. 만약 정밀 지도 API까지 유료화된다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은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안보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정밀 지도에는 군사시설, 도로, 주요 인프라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3년 구글 맵과 구글 어스의 위성사진 업데이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비밀 군사시설이 노출된 사건은, 정밀 지도 반출이 국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실례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은 정밀 지도를 전략 자산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해외 반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2016년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을 거부한 바 있습니다.
일본 사례: 1조 원 받고 지도 데이터 유상 제공
일본은 구글 등 글로벌 기업에 정밀 지도 데이터를 제공할 때 약 1조 원 규모의 사용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산업 생태계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정밀 지도 반출은 국가 전략 문제다
정밀 지도는 단순히 길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디지털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인프라 자산입니다. 이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보호할 것인가는 산업 경쟁력, 안보, 스타트업 생태계를 좌우하는 국가 전략의 문제입니다.
정부는 단기적인 기술 활용의 논리를 넘어서, 장기적인 데이터 주권과 산업 보호 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무상 반출이 아닌 조건부 유상 제공, 기술 검토, 이용 범위 제한, 그리고 국내 플랫폼 육성을 위한 전략적 투자가 병행되어야 할 시점입니다.